매일묵상

2023-7-11-화요일

사랑목사 2023. 7. 11. 13:29

샬롬! 2023-07-11-화요일입니다

 

사무실에 앉아 하얀 백지 위에 무심코 별 하나를 그렸다.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별 하나만 달랑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남은 여백이 너무 아깝다.

달도 그리고 은하수를 그리고 무언가를 빽빽히 채워야 하나?

 

가만히 별을 쳐다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별이 없을 때는 종이 한 장에 불과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별 하나 그려 넣었더니

종이가 별을 품은 우주가 되었다.

 

텅 빈 것이 텅 빈 것이 아니었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구나

소용없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별 볼일 없다 했던 것이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어찌 보면 종이에 여백은 우리의 고난을 닮았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은 추운 겨울처럼 느껴지는 그림이다.

거칠게 그려진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모진 풍파에 꺾인 가지는

겨우 생기를 유지한 채 옆으로 길게 누워 있다.

 

그리고 잣나무 세 그루. 잣나무 사이 대충 윤곽만 그려진 초라한 집 한 채.

텅 비어 있는 오른쪽 여백에 화제가 적혀 있고 붉은 낙관 두 개가 찍혀 있다.

그게 전부다. 전체적으로 춥고, 외롭고,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이다.

 

세한도라는 이 그림은 제주도 유배지에서 김정희 자신의 삶을 담았다.

그림을 보면 온통 넓은 여백이 가득하다.

여백이 가득하다는 말이 참 우습다.

 

그런데 여백이 있다는 것은 공허의 의미가 아니다.

여백은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써 나갈 소망과 여유의 공간이지 않을까?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땅에 무언가를 쓰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간음한 여인 앞에 선 예수님 아무 말씀 없이넓은 흙바닥에 뭔가를 쓰신다.

그런데 주님이 쓰신 무언가를 보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돌을 내려 놓는다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버린다.

 

도대체 무엇을 쓰셨을까?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주님이 쓰신 그 무언가는 그 땅의 여백을 다 채우셨고

모든 사람들은 그 글에 마음이 찔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여백이 있다.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신의 여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려 넣으시고

그 많은 여백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려 넣으신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고 우리 가정이 되고 우리 사랑의 교회가 된다.

 

내 인생의 여백은 내가 그려내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 그려 내신다. 천지를 만드신 그 놀라운 솜씨로..

 

고의용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