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4-토요일
샬롬! 2022-09-24-토요일입니다
우리는 부자청년에 말씀에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청년이 와서 주님께 했던 질문 때문입니다.
부자청년이 예수께 질문한 것은 자신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 하고 질문합니다.
부자청년은 자신이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니 영생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하고, 선한 일이라면 선한 선생이신 예수께 묻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장면에는 특이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10:2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부자청년을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 청년을 주의 깊게 응시하는 가운데,
그의 열정적인 종교심과 성실함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사랑하사’를 ‘대견해 하시며’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준수에 대한 그의 노력을 칭찬하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곧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실 ‘한 가지 부족한 것’의 준수를 강조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주님은 부자청년의 가상한 노력을 칭찬하셨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막10:20절에서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던 부자청년의 대답에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청년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이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드러난 것은
많은 재물에 대한 그의 집착입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많은 재물이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가는 그의 행동과 표정에서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온갖 아름다움과 율법의 준수와 많은 부와 명예를 다 갖춘 부자청년이었으나,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영생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완수했다고 장담했으나,
결코 이 땅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물질에 대한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아닌 또 다른 주인을 자신 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그가 자신만만해 했던 율법의 준수와 부모를 공경함은
영생을 이루는 길이 아니라 이미 영생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는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자가 맞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입니다.
레11:44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라”
고후 5: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오늘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살아갑시다.
그것은 영생을 얻는 길이 아니고 영생을 얻은 자의 삶의 모습일 뿐입니다.
오늘 그렇게 살아봅시다. 영생을 얻은 구원받은 자의 기쁨을 맘껏 누리며...
고의용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