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금요일
샬롬! 2022-07-08-금요일입니다
사람은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반응은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즉, 모든 분야에서 다가오는 것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기쁨과 감사로 반응하고 아프고 힘든 일에는 슬픔과 후회로 반응을 하게 됩니다.
모든 반응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모든 반응에는 자기 자신이 담겨 있습니다.
내 반응 속에, 내 인생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이해, 정치에 대한 이해, 대인적 사회성, 인격과 신앙, 성품, 지적 수준,
정서적 공감 능력, 살아온 흔적,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 등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좋은 일보다 슬프고 힘든 일에 대한 반응은 더욱 그 반응은 더욱 격하게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 비지니스가 어려워질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일을 실패했을 때, 반복되는 큰 실수로 길을 잃을 때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일에 대한 반응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여러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Ross)의 5단계는, 삶의 고통과 아픔, 죽음뿐 아니라 다양한 일상에서
나 자신의 신앙 인격적 반응을 생각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 5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부정’(denial)부터 합니다.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등의 말로 슬픔이나 아픔, 실수나 실패를 밀어내려 합니다.
Why me? 라는 말로 자기의 상실과 손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별리, 손실, 실패, 실수 등을 가능한 받아들이지 않으려 부정합니다.
2. ‘분노’(anger)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향해 무한정의 화를 냅니다.
다른 가족일 수도 있고, 지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일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 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어도 그 사람에게 분노함으로, 이 상실과 실패가 마치 자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 합니다. 떠난 사람이나 실패 혹은 실수한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자신은 아직 회복의 열정이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3. ‘타협’(bargaining)입니다.
“만일 이랬더라면…”하는 가정을 통해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을 합니다.
일어난 일에 대한 절충심이 생기는 때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부터는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막연한 작은 다짐이 생기기도 합니다.
4. ‘우울’(depression)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상실과 아픔, 실패와 실수에 대한 격한 감정, 정서적 불균형을 느낍니다.
분노와 다른 내적 감정이 생겨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기도 하고, 의도적인 외로움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고, 그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으로 극단적인 행동
도 가능합니다.
5. ‘수용’(acceptance)입니다.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의 현실(상실, 실패, 실수 등의)을 받아들입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생기며 일어섭니다. 수용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심리적 발
판을 만들어주며, 사건에 대해 재해석합니다.
‘어떠한 뜻이 계실 것이다.’ ‘내가 변해야지’ ‘잘 될거야’ ‘할 수 있어’ 등이 대표적 수용입니다.
사람마다 단계를 거치는 시간과 정도가 다르고 또 모두가 이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나는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과정보다는, [인정-성찰-수용-변화]로 이어지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반응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도 멋진 성도의 반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고의용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