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3-월요일
샬롬! 2025-03-03-월요일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이고 고통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사도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할까?
어째서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할까?
그것도 자신을 위하여 받는 고난도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너 때문에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롭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운다고 말한다.
이는 교회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즐겁고 기쁘다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6살짜리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사내아이를 등에 업고 쩔쩔매고 있다.
아이들을 쳐다보던 이가 물었다.
‘애야 등에 업힌 남자아이 때문에 힘들지 않니?’하고 물었다.
여자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아니오, 나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말한다.
“너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데 어째서 안 힘드니?”
그러자 여자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동생이거든요.”
그 말 한마디에 이해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면 우리가 짊어진 짐이 결코 무겁지 않다.
우리가 사랑하면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면 버겁지 않다. 싸울 이유도 없다.
우리가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된다.
지금 우리 교회가 좀 버겁다고 느껴진다면
예배가 부담이 된다면 헌금이 부담이 되고
섬김과 헌신하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이 좀 식었구나! 생각하면 된다.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함께 함이 기쁨이 되고
사랑이 있어야 너를 위한 나의 아픔도 고난도 기쁘다고 할 수 있다.
고의용목사 드림